♬나는야 즐겁고 행복한 실버라네♬
(전)“사랑의봉사회” 회장 윤희완씨를 만나다
지난 2월 초 전국적으로 폭설이 내리던 날이었다. 출근길을 달리던 버스들이 폭설 때문에 쩔쩔 매다 마침내 멈추고 말았다.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들이 하나 둘 밖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출근 시간은 다가오고 언제 출발할지 모르는 버스 안에서 마냥 기다릴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 일행 속에 전 ‘사랑의봉사회’ 회장이었던 윤희완(69세)씨 부부도 있었다.
늘 즐겁게 생활하는 윤희완씨
윤씨부부는 성남공단 벤츠기업 사무실 10여 곳의 청소를 맡고 있었다. 폭설 때문에 도로 집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걸어서라도 일터로 가야한다는 확고한 아내의 주장으로 두 사람은 칼바람이 휘날리고 무릎까지 차오른 눈 속으로 두 손을 꼭 잡고 출근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윤씨 아내는 관절염으로 다리도 시원치 않은데도 불구하고 먼저 지나간 자동차 바퀴의 흔적을 따라 힘겹게 걸어갔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설은 내리고 있었지만 두 사람이 잡은 손은 따뜻하기만 했다.
윤씨부부는 매일 아침 새벽 4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단정한 모습으로 일터로 가기위해 준비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15분의 거리를 직접 운전, 출근한다. 공단에서 정오까지 일을 끝내고 부부는 함께 맛있게 점심을 먹고 오후의 일을 하기 까지 잠시의 시간을 내 ‘수정종합노인복지센터’의 노인자살예방 방지를 위한 “노인생명돌보미”의 상담사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노령화가 되다보니 어르신들의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하는 노인들이 점점 늘어가는 추세다. 노인생명돌보미는 노인들의 우울증을 상담, 많은 대화를 통해 자살을 미연에 방지한다. 상담일을 끝내고 윤씨부부는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다시 공단에서 청소를 한다.
윤씨는 40대 초반부터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봉사를 하게 된 동기는 고아였던 윤씨가 10대 이었을 때였다. 삶이 힘들었을 때 누군가의 칼침을 맞아 죽음의 문턱까지 갔는데 미지의 시민에 의해 병원에 옮겨졌고 의술이 아닌 인술로 수술을 해 주신 의사선생님의 은혜로 새 삶을 살게 되었다. 그 의사 선생님의 베려 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다. 그동안 살면서 늘 마음에 빚을 진거 같았던 자신을 도와준 주위의 사람들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새 생명 살리기 운동” 봉사회를 결성,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자신의 직업이었던 택시 운전 업을 살려 택시 내에 모금함을 설치, 성금을 모아 심장병, 백혈병 어린이들의 수술비를 마련 할 수 있는“사랑실은교통봉사대” (현 사랑의봉사회)를 태동시키게 된다. 처음엔 6명의 직원으로 시작, 1989년엔 19명으로 늘었다. 25년 동안 100여명의 어린이들에게 새 생명을 살게 해 주었고 지체부자유 1급 장애인들과 시각장애인들에게 차량지원을 위해 리프트카를 주문제작, 차량지원을 하는 봉사활동에 전염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2006년도에 청천병력 같은 일이 생기게 된다. 윤씨는 뇌출혈로 머리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회복이 빨랐다. 당시 수술을 집도한 여의도 성모병원 신경외과 과장님의 말에 따르면 3,000분의 1 에 해당 할 수 있는 확률로 수술결과가 좋아 아무런 수술 후유증 없이 회복 된 것은 기적이라며 그동안 살면서 좋은 일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그 일로 인해 봉사활동은 접게 되었고 지인의 도움을 받아 제주에서 3년 살면서 가축을 기르고 농장을 하는 과정에 건강이 완전 회복되었다.
2009년 12월 다시 성남으로 돌아와 성남공단 사무실 의 미화 사업을 하게 되었다.
70이 다 된 나이에도 활기찬 활동을 하는 윤씨는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일이 있어 돈을 벌어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 무엇보다 수입으로 사회 봉사단체에 후원도 할 수 있어 좋고, 손녀손자에게 용돈을 주니 기분이 좋다. 늘그막에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으니 얼마나 당당 하냐”라며 너털웃음을 웃는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으니 80세 이후에는 여행카를 제작, 아내와 함께 전국 곳곳을 여행을 하는 게 꿈이란다. 22세에 자신을 만나 지금까지 고생만 한 아내가 너무 고맙다며 앞으로는 아내를 위해 봉사를 하겠노라고 했다. 어려운 살림에도 봉사만 하며 살아온 남편에게 불평 한 번 하지 않고 세 자녀를 서울대. 고려대 등 훌륭하게 키운 아내야말로 훌륭한 엄마요 아내라고 했다.
평생을 봉사를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봉사가 몸에 배여 있는 윤씨는 초대 권투협회 이사를 역임, 현재 역시 권투협회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사랑의봉사회” 고문이며 “사랑의손” 자문위원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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